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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2. 롬1:1 -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
글쓴이 : ydkorea    날짜 : 2014-07-0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 정체성

1: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 정체성>

 

바울은 로마의 성도들에게 보내는 이 중요한 서신에서 자신을 가장 먼저 어떻게 소개하고 있습니까? 그는 자신에 대해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1:1a)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로마의 성도들에게 소개하면서 로마서를 시작하고 있는데, 가장 먼저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당시에 로마에는 매우 많은 종(노예)들이 있었습니다. 로마 제국 전체로 보면, 인구의 절반에 해당하는 약 6천만 명 정도의 노예가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에 얼마나 노예들이 많았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로마는 노예에 의해서 지탱되는 나라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노예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인격적인 존재로 대우받지 못하는 당시 사회에서 가장 비참한 존재, 사회 최하층의 존재였습니다. 그들은 물건이나 짐승처럼 취급받았습니다. “노예와 당나귀는 똑같은 존재인데, 노예는 말을 할 줄 알고 당나귀는 말을 하지 못한다고 말이 있었을 정도였습니다. 심지어 주인이 마음대로 노예를 죽여도 죄가 되지 않았습니다.

 

당시에는 노예를 사고파는 노예시장도 많았는데, 노예시장에 가면 반나체 상태로 단 위에 전시 되어 있는 노예들을 흔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그것을 구경하다가 자신이 원하는 노예를 발견하면 주인이 값을 흥정해서 노예로 사갔습니다. 주인의 집에 끌려간 노예들의 목에는 개목걸이처럼 목걸이가 걸려 있었고, 이마나 다리에 낙인이 찍혀 있기도 했습니다. 그것으로 노예들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알려준 것입니다. 노예시장에서 돈에 팔려 집으로 끌려간 노예는 주인이 시키는 대로 평생토록 일해야 했습니다. 그들은 이름도 없었고, 자신의 미래에 대한 꿈과 계획도 가질 수 없었습니다. 노예는 당시의 사람들에게 가장 저주받은 신분이었습니다.

 

바울은 얼굴을 한 번 보지 못한 로마의 교우들에게 편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바울은 그들과의 좋은 첫인상을 위해서 그는 가장 분명하게, 가장 인상적으로 자신을 소개하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가장 먼저 로마의 교우들에게 자신을 종이라고 소개했습니다. 로마에 있는 사람들, 특히 지식인들과 상류층의 로마인들에게 그리스도인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종과 같은 자라는 말은 거리낌을 줄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종이라는 말의 깊은 의미를 잘 이해하는 자들도 있었겠지만,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인이 정말 종이냐?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그렇게 비참한 존재가 되는 것이냐?”라고 분명히 생각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바울은 처음부터 로마의 성도들에게 스스로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선언하며 자신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자신을 가장 정확하게, 적절하게, 올바르게 소개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시에 로마에 있는 성도들은 이미 바울을 매우 잘 알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 시대에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가장 위대한 복음의 증거자요, 그리스도의 제자 중에 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방의 많은 교회들을 개척해 선교와 하나님 나라의 영역을 크게 넓혔습니다. 또한 바리새인이요 유명한 당대의 랍비였던 가말리엘의 제자로, 학문과 경건에 있어서 촉망받는 유대교 종교지도자였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로마의 성도들에게 얼마든지 더 근사하고 좋은 말로 자신에 대해 소개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로마의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말 가운데 하나가 종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을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고백하며 로마서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구원에 대한 비유 가운데 하나로 노예에서 아들이 되는 것(노예의 비유) 혹은 로마 시민권을 가진 자의 양자로 입양되는 것(양자의 비유)을 직접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이것만큼 기독교의 구원을 정확해주는 것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저주받은 노예의 신분에서 아들이 된다는 것, 로마의 시민이 된다는 것은 말로 너무나 강렬하고 분명하게 기독교의 복음을 알려주는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구원이라는 것은 노예에서 아들이 되는 것, 노예에서 로마 시민권을 가진 자의 양자로 영입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19458월에 오랜 세월 동안 일본의 식민지로 있다가 우리나라가 광복을 맞이하게 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약 한 달 동안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광복의 기쁨을 즐겼다고 합니다. 식민지에서 해방되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고, 너무 기뻐서 견딜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에게 광복절이라고 해도 별 감흥이 없지만, 그 당시의 사람들에게 기독교의 구원을 광복이라는 말처럼 쉽게 설명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종에서 아들, 로마시민으로의 변화만큼 기독교의 구원을 잘 말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던 것입니다. 종으로부터의 구원을 이야기하던 자가, 스스로 종이라고 하는 것은 매우 이해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보내는 이 소중한 편지에서, 바울은 자신을 어떻게 소개할 것인가를 놓고 고심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을 종으로 소개하는 것이 가장 옳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니면 그가 항상 자신을 그리스도의 종으로 여겨왔기 때문에 너무나 자연스럽게, 로마의 교우들에게 있어서 종이라는 말이 줄 수 있는 거부감을 인식하지 못한 채 자신을 종으로 소개했을 수도 있습니다. 바울의 서신서들 가운데서도 자신을 종이라고 소개하며 서신을 시작하는 것을 빌립보서(1:1)와 디도서(1:1)에서도 찾아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분명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본문에서 우리는 바울 안에 있는 분명한 자의식, 자기정체성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내가 누구인가?”라는 자기 인식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것은 자기 정체성과 자아 발견에 대한 문제이며, 인간에게 있어서 이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이것은 한 사람의 존재와 인격, 삶을 결정짓는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누구인지, 또 이 땅에서 무슨 일을 해야 하는 지를 정확히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 안에는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며, 이 땅을 구원할 구원자라는 자의식이 확고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삶을 살아가실 수 있었습니다. 바울도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정확한 자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의 종이며, 곧이어 복음을 위해 택정함을 입은 사도라고도 말했습니다. 이것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진정한 신분이요 가장 중요한 정체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