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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 롬1:1 - 예수그리스도의 종 바울
글쓴이 : ydkorea    날짜 : 2014-07-01

<: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의 관계>

 

문자 그대로 보면, 종은 헬라어로 둘로스(Doulos, δολος)입니다. 둘로스는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는 종(servant)과는 조금 다른 개념입니다. 노예(slave)라는 말이 좀 더 의미에 가까울 것입니다. 그들은 식민지 시대에 노예무역에 의해서 노예상인들에게 짐승처럼 비참하게 끌려갔던 노예들과 비슷한 처지에 있었습니다.

 

당시 노예들의 모습 가운데 하나를 벤허라는 영화에서 볼 수 있습니다. 영화를 보면, 배 밑에서 노를 젓고 있는 수많은 로마의 노예들의 다리에 사슬이 메어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노예들은 다른 곳으로 도망가지도 못하고 죽을 때까지 배에서 노를 저어야 했습니다. 전쟁이 일어날 경우에는, 싸움에서 지면 함께 비참하게 죽임을 당하거나 적국의 노예가 되어야 했고, 전쟁에서 이겨서 살아남아도 노예의 신분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이 노예에서 해방되는 길은 양자로 입양되는 것 밖에 없었습니다. 이처럼 노예는 주인에게서 죽을 때까지 벗어날 수 없고, 자신의 모든 것이 완전히 주인에게 붙들려진 존재였습니다.

 

로마 시대에 종(둘로스)은 주인에게 소속되어 그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사람을 의미했습니다. 그는 인격적인 존재로 취급받지 못하는 주인의 소유물이자 재산이었습니다. 생사의 모든 것이 주인에게 달려 있어서 주인이 죽이든지 살리든지 마음대로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주인이 하라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순종해야 했습니다. 이처럼 자신의 인격과 생명, 자유, 소유, 권리, 의지 등의 모든 것이 철저하게 주인에게 종속되어 있는 존재가 종(둘로스)이었습니다. 여기서 바울이 말하고 있는 종이란 이런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종에게 반대되는 말은 주님이라는 뜻의 큐리오스(Kurios, κυριος)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과 자신의 관계에 대해 주인(Kurios)과 종(Doulos)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입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혹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과의 관계를 주와 종의 관계로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신약에서는 주님이 하나님은 물론,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치는 표현으로 자연스럽게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백성들, 혹은 그리스도인과의 관계를 주와 종의 관계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통해서 일관적으로 흐르고 있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그 백성들과의 관계는 기본적으로 주와 종의 관계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로마의 교우들을 향해서도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14:7-8)고 했습니다. 바울뿐만 아니라 로마의 교우들, 그리고 위 구절의 우리에 포함되는 모든 자들은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자신을 위해 죽지도 않고 사는 것도 주를 위해 살고, 죽는 것도 주를 위해서 죽는 자들입니다.

 

<종의 신발을 신고>

당시의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유대인이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빵모자와 같이 생긴 모자를 쓰고 다녔습니다. 지금도 정통파 유대인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위해서 빵모자를 쓰고 다닙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 모자를 벗어던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신발을 신었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할 진정한 모습이며, 그리스도인들의 정체성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종의 신발을 신고 살아간 바울의 삶을 어떠했습니까? 주께서 이미 바울을 부르실 때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해를 얼마나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9:15b-16a)고 하셨습니다. 바울의 길은 주님의 이름,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이방 가운데서 해를 받아야 할 고난의 길이었습니다. 바울은 그것을 모두 알고 복음의 길, 그리스도의 종의 길을 나선 것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종인 자신의 삶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 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후 11:23b-27)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고후 1:8-9)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하느니라”(고후 4:8-12)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곤란과, 매맞음과 갇힘과 요란한 것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과,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 안에 있어 의의 병기로 좌우하고, 영광과 욕됨으로 말미암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말미암으며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는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 6:4-10)

 

바울은 그리스도의 종으로 수많은 고난과 핍박을 당했습니다. 주인이요 선생이셨던 주님께서 가신 길과 같이 십자가의 험한 길을 가야 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신분을 벗어 던짐으로 얼마든지 이러한 고난과 핍박을 피할 수도 있었습니다. 원한다면 얼마든지 도망갈 수 있었습니다. 사단의 종, 죄의 종의 자리와 달리, 그리스도의 종의 자리는 얼마든지 스스로 떠날 수 있는 자리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오히려 그리스도의 종으로 받는 고난을 귀하게 여겼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종으로 받는 고난을 영광으로 여겼습니다.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3:10-11)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그의 삶의 목표, 푯대였습니다. 그의 믿음은 히브리서에 기록된 모세의 믿음과 같았습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11:24-26). 바울이 갔던 길, 많은 주님의 종들이 갔던 길은 이 시대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또한 종의 신발을 신고 걸어가야 할 길입니다.

 

<스스로 주인에게 종이 되기를 원하는 자>

 

구약의 율법에서는 주인을 사랑해서 주인을 떠나지 않고 함께 하고자 하는 종, 스스로 주인에게 종이 되기를 원하는 자는 귀를 뚫어서 주인의 이름이 새겨진 귀걸이를 걸어주었습니다. 이것은 주인에 대한 종의 자발적이고 진정한 사랑에 기초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종이 진정으로 말하기를 내가 상전과 내 처자를 사랑하니 나가서 자유하지 않겠노라 하면, 상전이 그를 데리고 재판장에게로 갈 것이요 또 그를 문이나 문설주 앞으로 데리고 가서 그것에다가 송곳으로 그 귀를 뚫을 것이라 그가 영영히 그 상전을 섬기리라”(21:5-6)

 

종이 만일 너와 네 집을 사랑하므로 너와 동거하기를 좋게 여겨 네게 향하여 내가 주인을 떠나지 아니하겠노라 하거든, 송곳을 취하여 그의 귀를 문에 대고 뚫으라 그리하면 그가 영영히 네 종이 되리라 네 여종에게도 일례(一例)로 할지니라”(15:16-17)

 

우리도 마지못해 주님의 종이 되어서 사는 자들이 아니라, 바울을 비롯한 많은 주님의 종들과 같이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하기에, 주님의 종이 되어서 주님과 함께 동고동락하며 살아가는 자들이 되어야겠습니다. 율법에 기록된 것보다 더 높은 기준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과 함께 하는 자들이 되어야겠습니다.